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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태안설날장사씨름대회 문경시청씨름단 김보경 한라장사 등극문경시(시장 신현국)는“위더스제약 2024 태안설날장사씨름대회에서 문경시청씨름단 김보경 선수가 한라장사에 등극했다.”라고 전했다. 지난 11일 충남 태안종합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라장사(105kg이하) 결정전(5판3선승제)에서 남원택(창원특례시청)을 상대로 3-1로 누르며 개인 통산 8번째 한라장사에 등극하였다. 이날 김보경은 16강전부터 현역 최다 한라장사(14회) 오창록(MG새마을금고씨름단)을 2-1로 눌렀으며 8강에서는 박동환(부산갈매기씨름단)을 2-0로 꺾고 준결승전에 진출하였다. 준결승전에서는 우승 후보 김무호(울주군청씨름단)를 상대로 2-1 승리를 가져오며 결승에 진출했다. 기세를 몰아 한라장사 결정전에서 뿌려치기로 기선을 제압했고, 두 번째 판에서는 남원택이 어깨걸어치기로 만회했지만 이어 김보경의 덧걸이와 왼배지기로 황소 트로피의 주인공이 되었다. 신현국 문경시장은“작년 12월 전국 최고의 시설 문경천하장사씨름장을 준공하고 동계 훈련을 이어온 선수들의 땀과 열정이 올해 첫 대회이자 명절 최고의 대회인 설날장사씨름대회에서 문경시청씨름단 김보경 선수가 한라장사에 등극하여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라며“앞으로 남은 경기도 부상 없이 최선을 다해 전국의 씨름팬들에게 씨름의 매력과 즐거움을 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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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문경’ 정규리그 우승문경시(시장 신현국)는 “2023 쏘팔·코사놀 레전드리그 Yes문경팀이 정규리그 우승했다.”고 전했다. 올해 8번째 시즌을 맞아 새롭게 탈바꿈한 2023 쏘팔·코사놀 레전드리그는 8월 14일 개막전 이후 최종 14라운드까지 경기를 마무리하며, Yes문경팀은 종합전적 10승4패로 2위팀(KH에너지)을 두 경기차로 따돌리며 정규리그 우승하였다. ‘Yes문경’팀은 정규리그 1위로 포스트시즌 챔피언 결정전으로 직행하여 1차전인 12월7일 19시를 시작으로 3경기 2선승제로 진행되며, 상대팀은 플레이오프 승리팀과 통합우승을 놓고 바둑TV 생중계로 경기가 진행될 예정이다. (재)한국기원이 주최·주관하는 2023 쏘팔·코사놀 레전드리그 팀 상금은 우승 3000만원, 준우승 1500만원, 3위 1000만원, 감독에게는 우승 350만원, 준우승 200만원, 3위 150만원이 주어질 예정이다. 신현국 문경시장은 “창단 첫해 정규리그 우승으로 포스트시즌 챔피언 결정전에 직행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남은 경기도 부담 없이 전국의 바둑팬들에게 바둑의 묘미와 즐거움을 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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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민속씨름 안산김홍도장사씨름대회, 문경시청 단체전 우승문경시(시장 신현국)는 “위더스제약 2023 민속씨름 안산김홍도장사씨름대회 단체전에서 문경시청씨름단이 우승했다.”고 전했다. 지난 10월 29일 경기도 안산시 올림픽 기념관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 경북 구미시청을 종합 전적 4-3으로 꺾고 짜릿한 역전 우승을 확정했다. 이날 진행된 결승 첫 번째 경기에서 김우혁(문경시청)이 상대 정재욱(구미시청)에게 0-2로 패하며 기선을 빼앗겼다. 두 번째 경기인 이민섭(문경시청)과 김현수(구미시청) 경기에서는 첫 번째 판을 이긴 이민섭 선수는 두 판 연속 패하며 종합 전적 0-2가 되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김보경(문경시청)이 세 번째 경기에 출전하며 이광재(구미시청)를 0-2로 가볍게 누르며 문경시청의 첫 승을 가져왔다. 이어 네 번째 경기에서 오정무(문경시청)가 차승진(구미시청)을 상대로 2-1로 어렵게 승기를 가져오며 종합 전적 2-2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동점이 된 중요한 상황에서 다섯 번째 경기에 출전한 이현승(문경시청)은 상대 안해용(구미시청)을 상대로 2-1 역전시키며 문경시청에 종합 전적 3-2 첫 우세를 가지고 왔으나, 신현준(문경시청)이 유영도(구미시청)에 1-2 역전패를 당하며 종합 전적 3-3으로 남자 일반부 단체전 결승은 마지막 일곱 번째 판까지 이어졌다. 우승을 가리는 마지막 경기에는 앞 경기와는 다르게 김종선(문경시청)이 최둘이(구미시청) 선수를 2-0로 가볍게 누르며 종합 전적 4-3으로 단체전 정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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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 이강년 의병 진군로 순례 해설전 문경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이만유 문경읍 갈평리 마을 입구 삼거리는 이강년 의병장 전적지로, 1907년 10일~11일 양일간에 있었던 갈평전투 전승을 기념하기 위하여 1967년 갈평리 주민들과 이강년을 추모하는 인사들이 뜻을 모아 경모각(景慕閣)을 세웠고, 1979년 관에서 전승기념비를 세웠다. 1907년 9월 9일 저녁 주흘산 혜국사 승려들이 상초곡에 주둔하고 있는 이강년 의진(義陣)을 찾아와 나라를 위해 싸우는 의병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며 저녁밥을 지어 왔다. 이강년은 주지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모두 배불리 먹고 하룻밤을 이곳에서 지냈다. 9월 10일 새벽 일찍 하초곡을 거쳐 요성으로 부대를 옮겨 주둔하고 있을 때 갈평 쪽에서 포성이 울려왔다. 척후병의 급보에 의하면 어젯밤 갈평리로 들어간 조동교, 김현규 부대와 일본군과의 교전에서 의병이 대패하였으며 흐르는 시냇물에서 피비린내가 날 정도로 인명 피해가 크며 갈평마을은 왜군이 불러 질러 화염이 치솟고 있다고 하였다. 급히 진군계획을 세우면서 현지 정세를 살펴보니 수백 명의 일본군이 있었으나 달아난 의병을 추격하거나 마을에 숨어 있는 의병을 수색하기 위해 흩어져 있고 갈평 냇가에는 본진 50여 명, 1개소대 병력만 남아 있는데 지금 점심 취사 준비와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후기 의병의 주된 전술은 치고 빠지는 유격전이 대세였다. 운강 이강년은 기습작전을 펴기로 하고 제장(諸將)을 불러 사방으로 분산, 적의 주둔지 가까이 까지 은밀히 접근하여 매복하고 있다가 내가 총을 쏘면서 깃발을 흔드는 신호를 보내면 일제히 진격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여 무방비 상태에서 사방에서 기습당한 일본군은 당황하여 일부는 총을 들고 저항했지만, 대다수는 도망가기 바빴다. 이렇게 하여 조동교, 김현규 의병부대에 치명적 타격을 주고 마을을 불태우는 등 약탈을 일삼던 일본군 본진 1개 소대를 궤멸시키고(적 8명을 생포 및 사살) 일본군이 소지했던 무기와 탄약을 노획한 갈평전투는 의병 전투사에 빛나는 큰 성과였다. 이어서 9월 14일 적성전투에서 신태원 후군장 등 아군이 전사하는 피해를 당한 후 예천 명봉사에 머물다가 일본군의 공격이 심해지자 단양을 거쳐 영춘으로 향했다. 9월 25일 영춘전투에서 승리하고, 10월 12일 괴산 연풍전투에서 일본 수송대를 급습하였으며, 10월 22일 원주 유치전투에서 일본군을 섬멸하고, 11월 2일부터 11월 15일까지 4차에 걸친 죽령전투에서 일본군 수십 명을 사살 및 격퇴하였다. 이어서 소백산전투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세 불리로 단양 영춘으로 퇴각한 뒤 신돌석부대와 합진하여 순흥을 공격하여 일본군 퇴각시켰다. 다시 11월 26부터 12월 25일까지 충북 단양 일대에서 유치전투, 백자동전투, 영춘궁동전투, 복상동전투, 월계동전투 등 크고 작은 전투를 하며 승리와 패배를 거듭하며 일제에 항거하는 전투를 계속하다가 12월 말 서울진공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춘천 쪽으로 이동하였다. 서울진공작전은 1907년 대한제국 군대해산이 있었다. 이에 반발한 신식무기와 탄약을 가진 정예 군인 3천 명이 합류하고 전국 각지에서 모인 1만여 의병들이 13도 창의군을 결성하여 1908년 1월 일으킨 한성 탈환 작전이다. 총대장으로 경기도 여주 출신이며 문경으로 이주하여 은둔 생활을 해 오다 거의하여 관동창의대장(關東倡義大將)에 오른 이인영(李麟榮)을 추대하여 진공 작전에 돌입했으나, 효(孝)란 절대 가치를 가진 유림으로서 부친의 사망 소식을 듣고, 문경으로 낙향하였다. 이후 이인영을 이어 총대장 역할을 맡은 창의군 군사장(軍師長)인 선산 출신 왕산 허위(許蔿)는 동대문 밖 30리(현재 서울시 중랑구 망우리 일대)까지 진격하였다가 일본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철군하였다. 비록 실패한 작전이었지만, 서울진공작전은 흩어져 있던 민족의 역량을 집결시켜 일제에 대항,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때 운강 이강년은 호서창의대장(湖西倡義大將)으로 참여하였다. 운강 이강년은 해가 바뀐 1908년에도 변함없이 항전하였는데, 1월 6일 경기도 동북부 낭천전투를 비롯해서 3월 28일까지 가평 건천전투와 용소동전투, 대청동전투, 포천 청계전투에 임했으며, 4월 6일부터 5월 3일까지는 강원도 인제 백담사전투, 강릉 하사동전투와 사동전투, 홍천 북면전투, 양양 백사장전투를 계속하였으며, 5월 16일에는 경북 북부 봉화 서벽전투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격전을 벌여 대승하여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다시 6월 4일 봉화 내성전투, 6월 10일 봉화 재산전투, 6월 21일 제천 오미리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했다. 이렇게 많은 전투 중에 ‘봉화 서벽전투’에서 이강년이 대승한 것을 기리기 위해 봉화군민들이 뜻을 모아 1984년 12월 봉화군 춘양면 서벽초등학교 입구에‘항일의거기념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아! 슬프도다! 하늘도 무심하지! 강원도·충청도·경북 일대에서 종횡무진 활동하셨던 운강 이강년 선생의 13년(1896년∼1908년)간의 의병 투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애석하게도 1908년 7월 2일(음력 6월 4일) 청풍군 금수산 ‘작성산(鵲城山)전투’에서 발목에 총상을 입고 피체되셨다. 이강년은 체포 직후 상처를 치료해 주려는 일본군의 손길을 뿌리치고 그들이 주는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이때 한탄하기를 “탄환의 무정함이여 발목을 다쳐 나아갈 수 없구나 차라리 심장에 맞았더라면 이런 수모를 받지 않을 것을” 또 옥중에서 “한평생 이 목숨 아껴본 바 없었거늘 죽음 앞둔 지금에사 삶을 어찌 구하랴만 오랑캐 쳐부수길 다시 찾기 어렵구나 이 몸 비록 간다고 해서 넋마저 사라지랴”라는 시를 남겼다. 의병장 이강년은 왕손으로서, 선비로서, 의병장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죽겠다며 면회 온 아들에게 구차하게 “살려 달라 하지 말라! 만약 그렇게 한다면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하는 의연함을 보였다고 한다. 한평생 나라와 민족을 위해 투쟁하신 이강년 선생은 마침내 1908년 10월 13일(음력 1908. 9. 19) 51세를 일기로 의기에 찬 일생을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시니 하늘도 산천도 슬피 울었다. 시신은 유언에 따라 두 아들 이승재(李承宰)·이긍재(李兢宰)와 도선봉장 권용일에게 인계되어 서울 서초구 방배동 효령대군(孝寧大君)의 묘역에 출빈(出殯-임시 운구 안치)되었다가 나중에(12월 13일) 제천 두학동 장치미로 반장(返葬) 후 다시(1944년)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장암壯岩) 뒷산으로 이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강년 선생의 순국 후에 애국충정을 기리기 위해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고,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2층 중앙홀에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호국 인물인 을지문덕, 김유신, 계백, 최영, 강감찬, 이순신, 김종서, 권율, 곽재우,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등 22분과 함께 흉상으로 모셔져 있다. 이번 ‘운강 이강년 의병 진군로 순례’ 중에 ‘애국과 의병정신’이란 주제를 두고 대비되는 두 인물이 있어 교육적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들려준 내용을 소개하면, 문경시 가은읍 ‘운강이강년기념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선유구곡 제9곡 옥석대(玉蕮臺)에 학천정(鶴泉亭)이 있고 그 옆 너럭바위 위에 鶴泉(학천)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 글의 옆에는 글의 주인인 듯한 이름으로 李完用(이완용)이라고 새겨져 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강년과 이완용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강년과 이완용은 1858년생 동갑이다. 이강년은 22세에 무과(고종 17년-1880년)에 급제하고 조국과 민족을 위한 고난의 삶을 살다 중년인 51세(1858∼1908)에 교수형으로 순국하시고 전기한 바와 같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고 ‘전쟁기념관 호국인물 흉상’으로 우리 곁에 계시며 만인의 존경과 추앙을 받는 역사에 빛나는 인물이 되었다. 이완용은 24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일신의 영달을 위한 처신으로 부귀영화와 노년인 69세(1858∼1926)까지 천수를 누렸으나, 을사오적,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최악의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는 인물로 남게 되었는데 학생 여러분은 누가 참삶을 산 인간 승리자인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고 하였다. 문경에는 ‘독립운동 유공자’가 84인이 계신다. 그래서 문경은 ‘의병과 독립운동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문경 출신 역사 인물 중에 조국과 국민을 위해 헌신하다 생을 마치신 분이 많이 계신 반면에, 일신의 영달을 위해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한일합방에 찬성하는 등 친일 매국을 하고 조국의 젊은 청년들을 희생물로 하는 일제가 일으킨 태평양전쟁의 제물이 되도록 하여‘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문경인으로서 불명예스러운 자도 있다. 이번 3박 4일 일정을 마치면서 학생들에게 맺음말로, 우리가 이번에 걷는 순례길에는 이강년 의병대장 외에 이름이 알려진 의병은 물론이고, 이름 없이 사라진 의병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고, 그 혼이 살아 있는 길을 걸었다. 우리가 이 힘든 산악길을 걷는 의미는 고난의 세월을 살며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의병들을 기리며, 세계 유일 분단국가로서 북한의 핵 위협과 열강들의 이해관계 속에 언제든지 또 다른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우리 다 같이 의병 정신으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자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참여자 모두 마음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지난 2018년 6월 1일 ‘의병의 날’을 맞아 문경에서 개최된 행정안전부 주최 ‘제8회 대한민국 의병의 날 행사’에서 필자가 자작시인 ‘호국의 등불, 의로운 별들이여’란 추모 헌시를 낭독하였는데, 다시금 그때를 회상하며 낭독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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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대한체육회장기 전국 파크골프대회 문경에서 열려제11회 대한체육회장기 생활체육 전국 파크골프대회가 지난 5월 30일과 31일, 양일간 문경파크골프장에서 열렸다. 문경시(시장 신현국)의 후원으로 개최된 이번 대회는 전국 17개 시․도의 대표 선수 600여 명이 참가하였으며, 시니어부와 일반부로 나눠 남녀 각각 개인전과 단체전 총 36홀, 샷건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경기 결과는 대구광역시가 종합우승을 차지하고 그 뒤를 이어 부산광역시와 경기도가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으며, 이 외에도 개인전 및 단체전 각 부문별 1위에서 5위까지의 시상이 있었다. 경기가 열린 문경파크골프장은 영강천변에 위치한 45홀의 공인 경기장으로 쾌적한 경기시설과 아름다운 풍경으로 많은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한편 이번 대회는 6월 11일(일) 오전 10:55분부터 TBC 대구방송을 통하여 녹화방송될 예정이다. 신현국 문경시장은 “제11회 대한체육회장기 생활체육 전국 파크골프대회를 문경에서 개최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많은 관광지와 먹거리를 가진 문경에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가지고 돌아가셨으면 한다.”라며 대회 관계자들과 선수들에게 감사와 환영의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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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째 이어가는 ‘찾아가는 아리랑학교’ 올해도 대성황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위원장 : 이만유)는 지난 4월 22일 오후 2시 고모산성이 있는 마성면 신현리 돌고개 주막에서 1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3년 첫 번째‘찾아가는 아리랑학교’를 대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4년째 이어온 ‘찾아가는 아리랑학교’는 ‘아리랑도시 문경’의 정체성 확립과 위상을 높이고 ‘문경새재아리랑’을 지역주민은 물론, 문경을 찾아오신 관광객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전국적으로 보급, 확산시키기 위해 추진해 왔다. 문경새재아리랑이 근대 아리랑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성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지역 아리랑이 생겨나는 데 영향을 주었음에도 오히려 ‧진도‧밀양아리랑 등에 비해 국민의 인식도가 낮고 덜 불리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순수 민간인들이 모여 단체를 결성하고 이를 타개해 보려고 노력해 온 것이 이제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다. 이날 황재용 문경시의회 의장께서 바쁜 일정과 주말인데도 찾아오셔서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고, 채홍호 전 대구광역시 행정부시장, 김욱현 점촌농협 조합장, 김병철 점촌농협 본부장, 이경무 전 점촌농협 호계지점장, 김동익 전 문경구곡원림보존회 회장, 김임자 전 문경시여성대학총동창회 회장, 채성오 문희저널 대표, 이동재 문경시자원봉사센터 국장 등 내빈께서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시고 격려해 주셨다. 그리고 김임자 회장은 봉사 정신으로 지역 사랑과 문경새재아리랑 보급에 수고한다며 정성이 가득 담긴 금일봉으로 후원해 주셨다. 봄바람이 살랑대고 연초록 잎새가 싱그러운 화창한 날 오후에 펼쳐진 아리랑학교는 황동철 이사의 사회로 한두리국악단, 돈달하모니카,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합창단, 아도위 소속 강사 및 국악인들께서 감동적인 공연을 보여주었다. 함수호 단장이 기획한 프로그램 순서에 의해 식전행사로는 사물놀이, 태평소 연주와 본공연으로 문경새재아리랑을 비롯해 본조아리랑, 홀로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등을 불렀으며, 하모니카 연주, 가야금 합주가 있었다. 이어서 이만유 아도위 위원장의‘문경새재아리랑의 전래과정과 이해’란 주제로 이론교육이 있었으며, 문경새재아리랑 배우기, 참석하신 관광객 중 당일 배운 문경새재아리랑을 부르신 분에게는 ‘오미자 김’ 등 문경 특산물을 선물로 주었으며, 다듬이체험 등 다양한 교육과 공연, 체험 등으로 진행하였다. 그리고 교육 분위기를 보면서 중간중간 방귀타령, 뱃노래, 경기민요, 농요 편곡 논매기소리 등을 불러 지루하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마지막으로 관광객, 시민, 출연자, 아도위 위원, 강사, 종사자 등이 모두 나와 노래 부르고 춤추는 ‘한바탕 어울림’의 장을 펼치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날 참석하신 모든 분께 각자 생활 터전으로 돌아가셔서 문경새재아리랑을 잊지 말고 계속 불러 주시고, 가족 친지 지인들에게도 알려주시고, 오늘 만난 인연으로 문경새재아리랑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문경새재아리랑 전도사’가 되어주실 것을 부탁하였다. 올해 ‘찾아가는 아리랑학교’는 총 5회에 걸쳐 시행되며, 특별 과정으로 국내 사할린 동포 이주 마을을 찾아가서 문경새재아리랑을 보급하고, 디아스포라 아픔을 달래주면서 가슴 속 깊이 응어리진 한을 아리랑으로 풀어내기 위해 ‘경기도 양주시 사할린 동포 이주 마을’에서 ‘찾아가는 아리랑학교’를 개최할 계획이다. 아도위는 5천만 모든 국민이 문경새재아리랑을 알고 부르기를 기원하며, 아리랑학교를 일회성 행사로만 끝나지 않도록 정보화시대의 특성을 살려, 많은 사람에게 문경새재아리랑과 교육내용을 신문, 방송 등에 보도 자료를 내고 유튜브, SNS, 유인물, 광고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하여 우리가 ‘찾아가는 아리랑학교’를 기획 추진한 의도대로의 목적 달성을 기필코 이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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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산불됴심비전 문경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 이만유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유서 깊은 역사의 현장, ‘문경새재’에는 한글로 된 아주 특별한 비석이 하나 있다. 1990년 8월 7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26호로 지정된 ‘조령산불됴심표석(鳥嶺산불됴심標石)’이다. 조선 시대 때 산불 조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세운 비로, 원추형 화강암 자연석(높이 157㎝, 저변 너비 75㎝, 정상 너비 55㎝, 저변 둘레 255㎝, 중간부 둘레 92㎝)을 다듬지 않고 ‘산불됴심’이라는 한글로 된 글자(각자 깊이 0.5cm로 음각)를 세로로 새겨 놓은 비석이다. 문경새재는 영남(嶺南-영남지방)이 시작되는 곳이며 조선이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낸 9개 대로 중 4, 5번 대로가 지나는 길이라 관리는 물론 통신사, 과거 보러 가는 선비. 보부상 등 많은 사람이 지나는 길이기에 울창한 숲을 보호하기 위해 경고성 계도문으로 관할 조령별장이 세웠다고 본다. 특히 이곳에는 나라에서 필요한 목재로 사용할 황장목(금강송) 산지이기 때문에 산림 보호가 더욱 필요하다고 판단되며 한글로 새긴 것은 일반 백성들이 잘 알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 ‘산불됴심비’는 순수 한글비라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데 언제 세워졌는지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조심’을 ‘됴심 ’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구개음화(口蓋音化) 현상으로 보았을 때 조선 영·정조(渶·正祖) 시대에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이 비의 글씨 됴심은 고어체(古語體)이고 ‘됴심’은 ‘조심’의 옛말이므로 한글 변천의 실례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근현대에 이르러 한글로 된 비(碑)나 표석(表石)이 많지만, 조선 시대 때 세워진 수많은 비 중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한글 비석(碑石)이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에서 5기(基)밖에 없다고 한다. 조선 4대 임금인 세종대왕(1397년~1450년)께서 1443년(세종 25년) 백성들을 어여삐 여기사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한글을 창제하시고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1446년(세종 28년)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반포하였지만, 한글은 평민이나 상민(常民), 부녀자들이나 쓰는 언문(諺文-한글을 속되게 이르던 말)으로 취급받아서일까? 양반이나 선비들은 특권의식과 유식함을 과시하는 듯 계속 한자를 사용하였고, 결과적으로 비석을 세울만한 위치에 있는 사대부 다수가 한문으로 된 비문을 새겼다. ‘서울 이윤탁 한글영비(서울 李允濯 한글靈碑)’는 서울특별시 노원구 하계동에 있는 비석으로 1536년(중종 31)에 세워졌는데 1974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가 2007년 보물 1524호로 승격됐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비석은 높이 142㎝, 폭 63㎝, 두께 18㎝ 규모이다. 이 비석은 국한문 혼용 비석으로 특징적 가치는 비석 왼쪽 면에 “녕ᄒᆞᆫ비라거운사ᄅᆞᄆᆞᆫᄌᆡ화ᄅᆞᆯ니브리라 이ᄂᆞᆫ글모ᄅᆞᄂᆞᆫ사ᄅᆞᆷᄃᆞ려알위노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것을 풀이하면 “영(靈)한 비(碑)라. 거운 사람은 재화(災禍)를 입으리라. 이는 글(한문)을 모르는 사람더러 알리노라.”라는 한글 경고문인데, 우리나라 비문으로서는 한글로 쓰인 최초의 묘비문으로 알려져 그 역사적 가치가 높으며 국어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인흥군 묘계비(仁興君墓界碑)는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에 있으며 낭선군(郞善君) 이우(李俁)가 1686년에 이곳이 아버지인 조선 선조의 제12 왕자 인흥군(仁興君) 이영(李瑛-1604~1651)의 묘역임을 표시함과 동시에 훼손을 막기 위해 세웠다. 비에는 전서체의 제목과 한글 및 간기(刊記) 등이 새겨져 있는데 북쪽 비면 하단에는 20자 5행으로 “이비가극히녕검니심도사람이거오디말라”라고 쓰여 있는데, “이 비가 극히 영검하니(영묘한 위력이 있으니) 생심(生心)(어떠한 생각으로이라도) 사람이 거오(倨傲)(거만스럽게 낮추어 보지)하지 말라”라는 경고성 한글 고어가 새겨져 있다. 경남 진주시 비봉산(飛鳳山) 자락에 있는 의곡사(義谷寺) 주차장 오른쪽에는 18세기 중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96호로 지정된 ‘진주 의곡사 한글비석(晋州 義谷寺 한글碑石)’이 있다. 이 한글 비석은 전면에는 중앙에 ‘(南)無阿彌陀佛 塔’이라 새겨져 있고, 좌측에 이보다 좀 작은 글씨로 ‘父母生天目連經’이라 한자로 새겨져 있으며, 우측에 대칭이 되도록 이 한자의 음을 한글로 “부묘ᄉᆡᆼ쳔목연경”이라 새겼다. 그리고 유일하게 해외에 있는 한글비는 1624년 일본 지바현 다테야마(館山)시에 있는 불교사찰 다이간인(大巖院)에 세워진 ‘사면석탑’이다. 동서남북 네 면에는 각각 한글과 중국의 전서체 한자, 일본식 한자, 산스크리트어로 각각 '나무아미타불'이 새겨져 있다. 특이한 것은 음가가 없는 'ㅇ' 받침을 써넣은 것이다. 이는 ‘동국정운식’ 표기로 훈민정음 창제 초기부터 16세기까지만 사용된 표기법으로 새겨진 한글 비석이다. 그런데 왜 400여 년 전 일본 사찰에 ‘한글 비석'을 세웠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다테야마 지역의 향토 사학자들은 ‘임진왜란 때 숨진 조선인들의 혼을 위령하고 일본으로 끌려온 조선인을 위로하는 마음을 담아 한글을 새겼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하며 당시 다이간인의 주지 오요(雄譽)가 일본과 조선 사이에 일어난 비극적인 전쟁인 임진왜란의 상처를 극복하고 평화와 신뢰 회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비를 세웠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한글 비석에 대해 알아보았으나 현존하는 5기의 한글 비석 중에 문경의 ‘산불됴심비’만이 순수 한글로만 비문이 새겨져 있고, 그 외 네 곳의 비는 한글과 한문이 혼용된 비석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단 하나 ‘문경시’만이 보유한 문화재적 가치가 높고 자연보호의 시금석(試金石)이라고 할 수 있는 순수 한글비, ‘산불됴심비’의 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해 이 기회를 빌려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대한민국 보물이나 국보로 승격을 추진한다. 둘째, ‘산불됴심비’를 다양한 이미지로 브랜드화한다. 셋째, ‘산불됴심체 글꼴’을 만들어 전 국민이 사용케 한다. 넷째, ‘산불됴심비’를 다양하게 형상화한 상품을 만들어 문경특산물로 만든다. 다섯째, 문경새재 입구나 국도변에 초대형 ‘산불됴심비’를 세워 문경의 상징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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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에 불어오는 새로운 변화, 민관협력투자 업무협약식 체결문경시(시장 신현국)는 지난 2월 10일 14:00 시청 대회의실에서‘가치를 창조하는 개발회사’대원플러스그룹과 문경시의 관광개발을 위한 경제기반형 도시재생사업 (구)쌍용양회 민관협력투자 업무협약식을 체결했다. 협약식에는 신현국 문경시장, 황재용 시의장, 박영서 경상북도의회 수석부의장, 최삼섭 대원플러스그룹 회장, 최효섭 총괄사장, 장준영 한국광해광업공단 처장, 도의원, 시의원 등 관계자 40여명이 참석했다. 경제기반형 도시재생사업은 2020년 국토부 공모에 선정되었고, 민관협력투자를 통해 근대산업 유산인 (舊)문경 쌍용양회 시멘트 공장부지 및 건물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복합 문화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2026년까지 추진한다. 이날 협약식에서는 앞으로 (구)쌍용양회 부지 활용에 대한 제안내용을 설명하고, 대원플러스그룹은 향후 경제기반형 도시재생사업을 비롯하여 문경시 전반에 걸쳐 관광시설 개발 및 인프라 확충에도 상호협력하기로 했다. 문경시와 협약을 맺은 대원플러스그룹은 ▲2012년 80층 299m로 당시 아시아 최고의 주거 건물인 해운대 마린시티 두산위브 더제니스, ▲ 2017년 국내 최초의 해상케이블카인 송도해상케이블카, ▲2020년에는 시흥시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인 세계 최대, 아시아 최초의 인공서핑파크 웨이브파크 및 복합해양레저단지를 경기도 시흥에 조성하여 랜드마크 디벨로퍼로 이름을 알렸다. 최근에는 부산시의 난제였던 황령산 개발사업과 관련하여, 황령산 전망대 사업이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하여 본 궤도에 올랐으며, 2008년 부도로 인해 방치되어있는 (구)스노우캐슬을 도심복합휴양시설로 재개장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또한 게임계의 하버드라 불리는 시애틀 소재 디지펜공대와 협력하여, 아시아캠퍼스 설립 및 게임특화시티 사업을 추진하는 등 관광레저 및 콘텐츠 인프라 개발에 특화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신현국 시장은 “문경시는 중부내륙권 관광중심지의 역할을 해왔으나 지역을 대표하는 새로운 관광 아이템이 필요하다는 시민들의 요구가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구)쌍용양회 부지를 새로운 복합 문화공간을 만들어 현재 추진 중인 문경새재 케이블카와 함께 대표 관광지로 조성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행정지원 하겠다.”고 말했다. 대원플러스그룹 최삼섭 회장은 “디벨로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후대에 길이 남을 도시와 공간을 창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으며, 이번 협약을 계기로 문경시의 성장에 도움이 될만한 아이디어를 발굴하여, 문경의 관광과 경제 전반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보탬이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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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이강년의병대장 순국114주기 추모행사 개최(사)운강이강년의병대장기념사업회(회장 이영범)는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운강이강년기념관을 문경시로부터 위탁운영 받고 처음으로 10월 13일(목) 오전 10시 반 ‘운강이강년의병대장 순국114주기 추모행사’를 개최한다. 추모행사는 전주이씨효령대군파종회 청권사(이사장 이정일)가 주관해 의충사 사당에서 추모제향을 먼저 올린다. 이어서 기념관 마당에서 추모식을 가지며, 추모식 전후에 추모공연을 펼친다. 운강 이강년 의병대장은 1896년 2월 23일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우리나라 의병항쟁 역사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냈다. 선생은 한말 전후기의병사에서 경북북부, 충북북부, 경기도 동부, 강원도 전역에 걸쳐 30여회의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우리 민족의 기개를 더 높였다. 그러나 1908년 7월 2일 제천 작성전투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발목에 적탄을 맞고 피체돼, 그해 10월 1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최초로 교수형을 받아 순국했다. 나라에서는 1962년 3.1절에 대한민국 최고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문경시는 이를 기리기 위해 생가복원과 함께 26,466㎡ 부지에 전시관, 사당, 관리사, 동상 등을 건립하고, 2002년 4월 기념관을 개관했다, 운강이강년기념관은 그동안 문경시에서 관리해 왔으나, 올 10월부터 기념사업회가 운영위탁을 받았다. 이에 따라 기념사업회는 기념관 전문인력을 보강했으며, 선생의 정신을 기리고, 널리 전파하는 대표적인 호국교육 체험 장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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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미 문경시의원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 가져조선미 문경시의원 예비후보(가선거구 - 가은읍, 문경읍, 마성면, 농암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이 5월 14일 오후 2시 가은읍 버스정류장 앞 사무실에서 열렸다. 이날 개소식에는 홍종대 서문경농협조합장, 이윤재 가은노인회 분회장, 김기동 가은노인회 부회장, 김성대 가은인의 모임 방지기, 박종식 7929동기회장, 지지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됐다. 타 개소식과는 다르게 조선미 후보의 장남인 최진우 군이 사회를 맡아 참석한 내외빈께 감사의 인사와 더불어 어머니에 대한 응원과 지지를 부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축사를 맡은 안양대학교 김용국 교수(아시아문화연구원장)는 "조선미 후보가 경기도의원을 할 당시 친분을 쌓게된 인연‘ 이라며 ’그동안 시의원, 도의원들을 많이 봐 왔지만 조선미 후보만큼 주민을 위한 조례를 만드는 일부터 꼭 해야할 사업들을 공무원들과의 원만한 관계 설정 속에서 반드시 이뤄내고야 마는 해결 능력의 소유자‘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조선미 후보가 문경시의원이 되면 여러분의 숙원사업 해결 등으로 그 응원에 대한 보답을 반드시 할 것‘이라며 힘을 모아달라고 지지를 당부했다. 이어 김용국 교수의 축사에 대한 답사를 위해 나선 풍양 조씨 종친회 조농연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조선미 후보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며 정도를 걷는 정직한 사람으로 지역 주민들을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거라며 잘하라는 응원과 잘못했을시에는 따끔한 질책도 아까지 말라는 지역의 어른으로서의 따뜻한 당부를 하였다. 참석한 지역 주민들의 따뜻한 응원에 잠시 울컥한 조선미 후보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큰 절을 올린후 지난 국민의 힘 공천 낙천에 대해서는 죄송한 마음이고,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시는 여러분들 때문에 용기를 얻었고, 더 많은 채찍과 응원을 부탁드린다며 조선미가 꿈꾸는 행복도시 문경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어르신이 건강한, 일자리가 풍족한, 여성들이 행복한, 우리 모두가 안전한 문경‘이라는 슬로건 아래 4가지의 큰 공약을 발표하였는데 만성적인 인력부족 해결을 위한 외국인 계절근로자 투입 적극 지원, 퇴직자들의 지역활동 지원, 여성특수건강검진 지원 확대, 모두의 안전을 위한 보행권 확보 및 CCTV와 가로등 설치 확대 등이다. 경험이 다르면 능력이 다르다는 말과 함께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도록 끊임없이 소통하고 노력하는 조선미가 되겠다며 많은 지지를 당부했다. 한편 무소속으로 기호 4번을 배정받은 조선미 후보는 ’4번 타자 조선미‘를 강조하며 지역 주민의 고민을 한 방에 날려드리겠다며 배트를 휘두르는 퍼포먼스와 함께 활짝 웃어 보였다.